▲ KRISS 박인용 선임연구원(왼쪽) 연구팀이 텅스텐 탐침을 설치하고 있다.

[기계신문] 광원을 ‘어떻게’ 쓰는지가 현미경의 성능을 좌우한다. 광원이 최대한 좁게 모아져 방출되어야 마치 손전등으로 빛을 비출 때처럼 밝은 이미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이 차세대 현미경으로 주목받는 헬륨이온현미경의 이온빔 원천기술을 개발했다고 11일 밝혔다. 이온빔(ion beam)은 이온으로 된 빔 형태의 입자로, 이온현미경은 이온빔을 광원으로 사용한다.

KRISS 광전자융합장비팀 박인용 선임연구원팀은 자체 설계한 이온원(ion source) 장치를 이용해 3원자 탐침(probe)에서 이온빔을 생성하는 데 성공했다. 탐침 끝부분 원자의 개수가 작을수록 고휘도의 집속된 이온빔이 방출되고 더욱 밝은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

▲ 다원자 이온원(왼쪽)과 3원자 이온원 장치(오른쪽)의 비교 : 식각 전의 다원자 탐침은 넓은 면적에서 여러 방향으로 이온빔을 방출하는 반면, 이번에 개발한 탐침은 매우 좁은 면적(3개 원자)에서 고휘도의 이온빔을 방출한다.

헬륨이온현미경은 전자현미경 수준인 나노미터 이하의 영상 분해능은 물론, 전자현미경에서 하지 못하는 10 나노미터 이하의 정밀가공까지 가능하다는 점이 특징이다. 나노 공정기술, 재료과학, 생물학을 포함한 다양한 분야에서 헬륨이온현미경을 주목하고 있는 이유다.

헬륨이온현미경의 높은 분해능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이온원의 정교한 설계가 핵심이다. 이온원의 탐침을 첨예하게 만들어 이온빔이 방출되는 면적이 극도로 좁아야하기 때문이다. 뾰족한 탐침의 비결은 탐침 끝부분에 최소한의 원자를 남기는 것이다.

이처럼 고성능의 이온빔 원천기술은 이온현미경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지만, 기술 난이도가 상당히 높아 극소수의 해외 선진 기업만이 원자 3개 수준의 탐침 기술을 적용한 상용현미경을 판매하고 있다.

특히 정교한 탐침 제작을 방해하는 대표적인 요인이 산화막이다. 탐침이 진공환경에 설치되기 전 공기 중에 노출되면 탐침의 재료인 텅스텐 표면에 산화막이 생성되는데, 그동안은 탐침의 온도를 높이는 열처리 클리닝 과정을 거쳐 산화막을 제거했다.

열처리 클리닝을 위해서는 초고진공장치 내부에 복잡한 구조의 가열장치를 추가로 개발하여 설치해야 한다.

연구팀은 제거 대상이었던 산화막을 역으로 활용, 3원자 탐침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산화막이 포함된 절연층을 열처리로 제거하지 않고, 오히려 절연층의 산소를 응용하여 탐침을 뾰족하게 식각한 것이다.

▲ 절연층의 산소를 이용하여 탐침을 원자 3개 크기까지 뾰족하게 식각하는 과정

이번 성과는 이제 국내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의 현미경을 만들 수 있는 기반이 구축되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또한 기존 장비에서 고온 가열 부분 자체를 배제할 수 있어 훨씬 간단하면서도 효율적으로 이온빔을 생성할 수 있다는 데에도 큰 의의가 있다.

KRISS 박인용 선임연구원은 “이번에 개발한 장비는 기존 방법보다 단계를 대폭 줄인 이온빔 원천기술로서, 외산 측정장비에 의존하고 있는 국내 시장의 경쟁력을 크게 향상시킬 것”이라며 “탐침의 원자 수를 1개로 줄여 세 배 이상 밝은 ‘단원자 탐침’을 안정적으로 구현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고 설명했다.

한국연구재단 나노원천기술개발사업의 지원을 받은 이번 연구결과는 현미경분야의 세계적 학술지인 울트라마이크로스코피(Ultramicroscopy)에 6월 온라인 게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