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노 입자의 응집 막을 기술 제시

[기계신문] 화석 연료의 유한성과 유가 상승, 지구온난화 문제로 전 세계가 친환경 대체 에너지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다. 물을 원료로 하는 수소를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방안도 이 중 하나다. 물은 지구상에서 무궁무진하므로 화석 연료가 가진 자원 고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물 자체가 오염물질을 배출하지 않으므로 환경오염 부분에서도 자유롭다.

화석 연료를 사용하지 않고 수소를 생산하는 기술로 잘 알려진 것은 물의 전기분해다. 그 중 전기화학적인 수소발생반응(hydrogen evolution reaction, HER)은 가장 중요한 방법이다. 이 반응을 이용해 수소를 효율적으로 생산하기 위해 과전압을 낮추는 촉매가 개발돼야 한다. 이런 기술의 중요성은 이미 미국, 일본, 독일을 비롯한 기술 선진국에 의해 상당히 연구되어 왔다.

▲ 이리듐의 이론적인 수소 발생 성능을 실험적으로 규명한 UNIST 연구진_왼쪽부터 백종범 교수, 자비드 마흐무드 박사, 정후영 교수

지금까지 알려진 최고의 물 분해 촉매는 백금(Pt)이다. 그러나 백금은 귀금속으로 많이 쓰이기 때문에 촉매로 상용화하기에 가격이 너무 높다. 이뿐 아니라 낮은 안정성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최근 수소를 친환경적이고 효율적으로 생산할 ‘물 분해 촉매’가 개발됐다. 기존 촉매만큼 안정성을 보이면서 전기는 훨씬 적게 들어서 눈길을 끌고 있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은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 백종범 교수 연구팀은 새로운 물 분해 촉매 ‘이리듐엣콘(Ir@CON)’을 개발해 우수한 성능을 검증했다고 밝혔다. 이 물질은 ‘이리듐(Ir)’을 3차원 유기 구조체인 ‘쓰리디-콘(3D-CON)’의 기공 내부에 가둬서 고정시킨 형태인데, 논문으로 보고된 물 분해 촉매 중 가장 높은 효율을 보였다.

▲ 과전압이 낮을수록 좋은 촉매를 의미하는데, 가장 왼쪽에 있는 촉매인 Ir@CON이 산성과 염기성에서 모두 가장 낮은 과전압을 보여준다. 가장 왼쪽은 산성(acid, 황산이 0.5몰(M) 섞인 물)에서의 비교한 모습이고, 오른쪽은 염기성(alkaline, 수산화칼륨이 1.0몰(M) 섞인 물)에서의 비교한 모습이다.

수소는 산소와 반응해 전기를 만들고 물만 배출하는 청정 연료다. 연료를 태우는 연소 과정이 없어 이산화탄소 같은 배출물이 없고, 미세먼지를 줄이는 역할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수소는 천연가스나 화석연료를 통해 얻기 때문에 환경오염을 피하기 어렵다. 또 수소 운송비용도 높아 이를 해결할 기술적 장애물도 많다.

백종범 교수는 “환경오염을 일으키지 않으면서 수소를 생산하고, 만들어진 수소의 수송 문제도 해결할 방법은 ‘물의 전기분해’”라며 “물 형태로 운반하고, 수소가 필요한 장소에서 전기로 분해해 수소를 생산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 Ir@CON 합성 모식도 : a. HKH(hexaketocyclohexane), THA(triptycene hexamine), IrCl3의 반응으로 Ir@CON 촉매가 만들어지는 과정, b. 위에서 바라본 모습(x축), c. 옆에서 바라본 모습(z축)

물을 전기로 분해해 수소를 얻는 기술의 핵심은 ‘좋은 촉매’다. 그 조건은 물을 수소로 바꾸는 효율이나 내구성, 가격 경쟁력 등이 있다. 특히 물의 산도(pH)에 영향 받지 않고, ‘낮은 전압’에서 수소를 발생시키는 게 필수 조건이다.

연구팀은 지난해부터 루테늄(Ru) 기반의 촉매(Ru@C₂N, Ru@GnP)를 합성해 수소를 얻는 경제적인 방법을 제시해왔다. 특히 루테늄엣씨투엔(Ru@C₂N)은 기존에 보고된 수소발생 촉매 중 가장 낮은 과전압을 보였는데, 이번에 개발된 이리듐엣콘이 이 기록을 넘어섰다.

▲ 전기 에너지를 이용해 물에서 수소를 생산하는 Ir@CON 촉매에 관한 간략한 모식도를 나타낸다. 황금색을 띠는 이리듐(Ir) 원자가 3D-CON 구조와 연결돼 물의 전기화학반응 효율을 높인다.

이리듐(Ir)은 이론적으로만 따지면 백금(Pt)보다 우수한 촉매다. 하지만 원소끼리 뭉치는 응집 현상(Aggregation)이 나타나 제대로 성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번 연구에서 연구팀은 이리듐 입자의 응집을 막는 방법을 찾았고, 성능도 검증했다.

다공성 3차원 구조체(3D-CON) 내부에 고정된 이리듐은 응집되지 않았고, 이론적으로 예측된 성능을 보였다. 특히 물의 산도(pH)에 영향을 받지 않았으며, 다른 금속 촉매와 비교해도 과전압이 가장 낮았다.

백종범 교수는 “이론적으로 예측했지만 누구도 실험으로 구현하지 못했던 이리듐의 수소 발생 성능을 창의적인 방법으로 접근해 실험적으로 규명한 최초 사례”라며 “이리듐엣콘은 현존하는 물 분해 족매 중에서 가장 낮은 에너지 손실률과 가장 높은 전류량 대비 성능을 보인다”고 밝혔다.

또한 “이번에 개발한 나노 입자의 응집을 막는 기술은 나노재료과학 분야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 학문적으로나 기술적으로 잠재적 가치가 높다”고 전망했다.

▲ 주사전자현미경(SEM)과 투과전자현미경(TEM) 이미지 : a는 SEM 이미지로 기준선(scale bar)이 1㎛를 나타낸다. b와 c는 TEM 이미지로, b의 기준선은 4㎚, c의 기준선은 1㎚을 나타낸다.

현재 많은 선진국이 정부 차원에서 미래청정 에너지원으로 수소를 고려하며, 수소산업의 중심에 있는 물 분해 촉매 개발에 힘쓰고 있다. 따라서 물 분해 촉매의 연구방향을 제시한 이번 연구 성과가 궁극적으로 상업화까지 이어질 경우, 에너지 및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하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또 이번 연구는 학술적으로도 의미가 크다. 비가역 반응을 통해 합성한 안정적인 3차원 유기 구조체에 금속 나노 입자를 고정함으로써 금속촉매가 가지는 여러 문제점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제안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많은 연구자가 이번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더 발전된 물 분해 촉매를 개발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리더연구자지원사업과 교육부-한국연구재단이 주관하는 BK21 플러스사업, 우수과학연구센터(SRC), 미래소재 디스커버리사업의 지원으로 수행되었으며, 연구 성과는 국제학술지 어드밴스드 머티리얼스(Advanced Materials) 12월 27일(목)자 뒷표지로 출판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