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리 기판 위에 얇게 올려진 주석-셀레나이드. 육안으로 봐도 결함 없이 매끈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기계신문] ‘열전 기술’은 열전 소재를 이용해 열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또는 전기에너지를 열에너지로 직접 변환하는 기술이다. 이 기술은 지열이나 산업 배·폐열, 체열, 태양열 등 다양한 형태의 열에너지를 회수해 전기에너지로 변환하는 새로운 청정 신재생에너지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최근 국내 연구팀에 의해 ‘열전 기술’에 기여할 소재가 개발됐다. 재료를 얇게 만들어 구부러진 표면에도 붙일 수 있는데다 성능까지 높였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은 신소재공학부 손재성 교수팀이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의 신호선 박사팀과 공동으로 ‘주석-셀레나이드(SnSe)’의 결정 구조를 나란히 정렬해 고효율 초박막 열전소재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개발한 공정은 ‘재료를 용액에 녹여 열전 잉크로 합성한 뒤 가열하는 방식’이라 손쉽고 저렴하다. 제작된 소재의 성능은 기존 덩어리 형태의 열전소재에 뒤지지 않았으며, 공정 자체도 간단해 다양한 분야로 응용할 잠재성이 크다.

▲ 용액 정화 공정을 거친 후 다양한 용매에 분산되어 있는 열전 잉크

열전소재는 소재 양쪽에서 나타나는 온도 차이를 이용해 전기를 발생시킬 수 있는 물질이다. 이 소재로 열전발전기를 만들고 자동차나 선박의 엔진 등에 부착하면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 열전발전기의 구조나 원리는 매우 단순하기 때문에 성능을 더 높이려면 더 좋은 열전소재를 개발해야 했다.

특히 2014년 처음 보고된 주석-셀레나이드는 성능 면에서 1~2위를 다툴 정도로 촉망받는 열전소재다. 하지만 이 물질의 결정 구조를 제어하기 어려워 기대만큼 우수한 열전 효율을 보이진 못했다.

이번 연구에 참여한 허승회 UNIST 신소재공학과 석박사통합과정 연구원은 “주석-셀레나이드는 종이가 층층이 쌓인 책처럼 독특한 층상형 결정구조로서, 이 구조가 나란한 단결정에서 열전효과가 나타난다”며 “종이가 구겨지면 책을 깨끗하게 인쇄할 수 없는 것처럼 다결정 구조에선 높은 열전효율을 얻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구팀은 주석-셀레나이드를 특정한 방향으로 성장시킬 2단계 공정을 개발했다. 1단계 공정에서는 ‘주석-다이셀레나이드(SnSe₂)’ 박막을 만들고, 2단계 공정에서 열처리해 ‘주석-셀레나이드(SnSe)’ 박막을 만드는 방식이다. 주석-다이셀레나이드가 특정한 방향으로 잘 성장하는 원소의 일종이라는 점에 주목해 새로운 방법을 고안한 것이다.

▲ 용액공정으로 고성능 열전소재를 제작하는 공정과 제작된 소재의 모습. (a) 열전 잉크 및 박막형 열전소재 제작 과정 모식도 (b) 박막 사진 촬영 이미지 (c) 박막 표면 전자현미경 촬영 이미지 (d) 박막 단면 전자현미경 촬영 이미지

조승기 UNIST 신소재공학과 석박사통합과정 연구원은 “주석-다이셀레나이드를 가열하면 셀레늄(Se) 원자가 증발하며 주석-셀레나이드가 된다”며 “앞서 형성된 주석-다이셀레나이드 결정이 이정표가 되기 때문에 주석-셀레나이드 결정 구조도 가지런하게 정렬된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제작된 주석-셀레나이드 박막은 기존 연구에 비해 전기적 특성이 10배 이상 우수했다. 또 단결정으로 성장시킨 덩어리 형태의 주석-셀레나이드 소재와 견줄 정도로 높은 성능을 보였다.

손재성 교수는 “원재료에 상당한 고온과 고압을 가하는 기존 방법은 생산비가 비쌀 뿐 아니라 원하는 방향으로 결정을 성장시키기 어려워 성능 확보가 어려웠다”며 “이번 기술은 간편하고 효율적일 뿐 아니라 주석-셀레나이드의 결정 방향까지 제어할 수 있어 향후 폭넓게 응용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 고성능 초박막 열전소재를 개발한 UNIST 연구진. 왼쪽부터 조승기 연구원, 손재성 교수, 허승회 연구원

이번 연구는 용액 공정을 통해 열전 소재 결정의 고배향성 구조를 실현시키고, 나아가 고효율 초박막형 열전소자를 제작할 가능성을 증명했다. 용액 공정은 기존의 제작 방식에 비해 제작비가 저렴하고 응용성이 넓어 향후 다양한 분야에 응용될 수 있다.

또한 용액 공정을 통해 합성된 무기물 열전 잉크는 그 점성을 조절해 열전 페인트로 발전시킬 수 있다. 이를 3D 프린터 기술을 응용해 열전 3D 프린팅 기술로 확장시켰을 경우, 대면적 열전 모듈 생산에 필요한 비용을 크게 절감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이번 연구는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의 저차원 소재게놈 제어평가기술 개발 사업,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연구재단이 추진하는 나노·소재원천기술개발사업 도전형소재기술개발프로그램 및 신진연구자사업을 통해 이뤄졌으며, 서울대 이원보 교수, 재료연구소 강전연 박사, 금오공대 박노진 교수, 한양대 장재영 교수팀도 공동 참여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 과학저널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 2월 20일(수) 온라인판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