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NIST 물리학과 정준우 교수 연구팀이 미세한 기름관에서 작은 물방울들을 만들 때 저절로 박자를 맞추는 현상을 최초로 발견했다. (우측부터) UNIST 물리학과 정준우 교수, 생명과학과 강주헌 교수, 물리학과 엄유진 연구교수

[기계신문] 동시에 빛을 깜빡이는 반딧불이의 무리나 여러 개의 추가 동시에 같은 방향으로 흔들리는 근접한 추시계들과 같이, 자연과 우리 일상에서는 다양한 진동자(oscillator)들의 동기화 현상(synchronization)이 발견된다. 이렇게 자발적으로 동시에 똑같은 일이 일어난다는 자연의 질서는 흥미롭지만, 그 원리를 과학적으로 명백하게 이해하기는 어렵다.

마이크로 세계의 유체 안에서 수영하는 세포들에서 볼 수 있는 편모나 섬모의 운동에서도 이런 동기화된 움직임이 존재하는데, 이 동기화 현상의 근원이 생물학적 작용인지, 아니면 세포 주변 유체를 통한 상호작용이 지배적인지는 학문적 논란거리가 되어왔다.

세포와 달리 손쉬운 조작이 가능한 미세유체(microfluidics) 실험을 통해 동기화의 유체역학적 모델을 제시할 수 있다면, 자연에 존재하는 다양한 유체 내부에서의 동기화 현상의 원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데 최근 UNIST 물리학과 정준우 교수 연구팀이 미세한 기름관에서 작은 물방울들을 만들 때 저절로 박자를 맞추는 현상을 최초로 발견했다. 또 이 동기화 현상의 원인을 설명할 이론적 모델까지 제시했다.

▲ 물과 기름의 유속 조건에 따른 물방울 생성의 변화. (a) (상단) 번갈아 나오는 동기화(out-of-phase)와 (하단) ‘동시 생성 동기화’(in-phase) (b) 실험에 쓰는 액체 종류와 유속 등을 변화시켜 동기화 정도(종류)를 이론적으로 예측할 수 있다.

기름이 흐르는 미세유체관에 물을 양옆에서 넣어주면 기름과 섞이지 않는 물줄기가 스스로 끊어져 물방울이 된다. 원래 이 물방울은 양쪽에서 엇박자로 만들어지는 것이 당연했다. 그런데 연구팀은 특정조건에서 처음에는 제각각 만들어지던 물방울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저절로 박자를 맞추며 동기화되는 장면을 잡았다.

연구팀은 이를 ‘경계면 간(계면)의 상호작용이라는 물리학적 원리’로 설명했다. 물-기름 간 경계면에서 미세하게 발생하는 진동을 시계추처럼 하나의 진동자로 본 것이다. 물방울이 여러 개 생기면 진동자가 물방울 수만큼 생기고 여러 진동자 간의 상호작용으로 물방울 생성 주기가 맞춰진다.

마찬가지로 물 속에서 떠다니는 세포의 섬모를 하나의 진동자로 보면 섬모들이 박자를 맞춰 움직이는 행태를 설명할 수 있다.

▲ 초기에 서로 다른 시간에 나오던 두 물방울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음의 피드백을 통해 동시에 나오는 상태로 안정화되는 컴퓨터 계산 예시

연구팀은 두 물방울 생성이 박자를 맞추는 정도를 두 물방울(계면)의 거리, 액체의 흐름 속도, 점도 등을 조절해 바꿨다. 이는 암이나 병원균을 진단하는 랩온어칩(Lap-on-a-chip)에서 액체 시료의 흐름을 조절하는 데 쓰일 수 있는 기술이다.

엄유진 UNIST 물리학과 연구교수는 “랩온어칩을 이용한 물방울 생성에 대한 기존 연구들이 간과했던 ‘동시 생성’ 동기화를 최초로 관찰한 것”이라며 “이 모델 시스템을 이용하여 미세유체 내에서 일어나는 동기화 현상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준우 교수는 “동기화 현상을 직관적인 원리와 함께 설명할 수 있는 교과서적인 모델 시스템으로, 복잡한 구조 제작 없이 유체를 제어할 수 있는 미래형 랩온어칩 기술로 유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 독립적으로 제어된 서로 다른 물방울들의 생성이 동기화되는 실험 예시들. (a) 서로 다른 압력(P1≠P2)에서 생성되어 크기가 다른 물방울과 (b) 점성이 서로 크게 다른(μ1≠μ2) 물방울의 생성에서 나타나는 동기화 현상

미세유체 계면 운동의 동기화에 대한 이해는 자연현상에서 볼 수 있는 수영하는 세포 움직임의 동기화 현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미세물방울의 이동을 제어할 수 있는 랩온어칩과 같은 미세유체 응용 분야에도 유용하게 이용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미세유체의 흐름을 제어하기 위해 밸브와 같은 구조를 별도로 랩온어칩에 부가해야 하지만, 동기화 현상에 대한 이해를 활용하면 별도 구조의 제작과 같은 번거로움을 줄이고 유체를 제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한편, 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강주헌 교수가 참여한 이번 연구는 네이처(Nature)의 자매지인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Nature Communications)’ 10월 15일자 온라인판에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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