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신문] 감염성 질환은 바이러스, 박테리아, 곰팡이, 기생충과 같이 외부로부터 우리 몸에 침입한 병원체에 의해 일어나는 전신 염증반응으로 심각한 상황에서는 급성 패혈증으로 진행되어 노인이나 면역력이 약화된 환자의 치사율을 높일 수 있다.

세계적으로 매년 3,000만 명 이상의 패혈증 환자가 발생되고 있다. 패혈증은 알맞은 치료를 받지 않으면 한 시간마다 치사율이 8%씩 증가하기 때문에 패혈증 환자의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빠른 진단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 감염병 진단에 주로 쓰이는 혈액배양법은 수일이 소요되며, 사이토카인 농도 측정법과 PCR 진단법은 환자의 상태나 감염이 경과한 시간에 따라 거짓음성결과를 낼 수 있다.

또 감염 진단에 필요한 검사기기, 시약 및 작업환경이 현장 진단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에 응급실이나 중환자실과 같이 즉각적 현장 검사가 이루어져야 하는 공간에서 사용이 가능한 새로운 감염 진단 기술개발이 필요하다.

더욱이 코로나19 같은 전염병의 대유행 상황에서 효과적 방역을 위해서는 빠른 진단이 필수다. 다양한 회사들이 PCR 기반의 진단 기술을 개발하고 있지만, 실제 검역이나 일상 생황에서는 발열 측정과 문진표 작성만으로 잠재적 감염자를 선별하는 작업을 수행 중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체의 면역반응을 모방한 ‘인공 혈관 칩’에 혈액 한 방울을 떨어뜨려 바이러스나 세균 감염 여부를 즉석에서 진단하는 기술이 나왔다. 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BME)의 강주헌 교수 연구팀이 병원균 감염 여부를 조기에 판별할 수 있는 미세 유체 칩을 개발했다.

▲ (우측부터) 강주헌 교수, 이민석 연구원, 권세용 연구조교수

머리카락 수준으로 가느다란 관으로 이뤄진 칩에 감염된 혈액을 넣으면 혈액 속 백혈구가 유체 관 벽면에 달라붙는다. 감염된 사람은 벽에 달라붙는 백혈구 숫자가 건강한 사람에 비해 눈에 띄게 많기 때문에 저배율의 광학현미경만으로 감염여부를 쉽게 판독할 수 있다.

검사에 소요되는 시간은 10분 내외로 짧다. 또 감염 극초기(감염된 지 1시간)에도 감염여부를 알아낼 수 있어 열과 같은 증상이 없는 잠복기 환자를 조기에 선별할 수 있다. 문진이나 체온 검진에 의존하고 있는 코로나 환자 선별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연구팀은 면역세포(백혈구)가 감염이 발생된 부위로 이동하기 위해 혈관 내벽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혈관 내벽에 붙는 현상을 모방했다. 개발한 칩의 유체 관 벽면에는 감염 시 혈관 내피세포가 발현하는 단백질이 코팅돼 있다. 이 단백질은 혈액 속을 떠다니는 백혈구를 붙잡는 역할을 한다.

▲ 미세 유체 칩의 구조와 유체 관에 부착된 백혈구. (A) 개발된 미세 유체 칩(좌)과 유체 칩을 측면에서 본 구조(우) (B) 미세 유체 칩의 사진과 백혈구의 부착(rolling)현상을 관찰한 사진. 건강한 사람의 경우 부착된 백혈구 숫자가 적다.

환자의 백혈구 표면에서도 혈관 내벽 단백질과 짝을 이루는 단백질 발현이 증가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백혈구의 비율이 높아진다. 이 때문에 환자의 혈액을 미세 유체 관에 흘렸을 경우, 유체 관 벽면에 달라붙는 백혈구 숫자가 건강한 사람에 비해 훨씬 많다.

권세용 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 연구교수는 “감염시 혈관 내벽 세포의 특정 단백질의 발현량이 증가한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졌지만, 백혈구 표면의 단백질 발현량 증가와 그 단백질을 발현하는 백혈구 비율의 증가는 이번 연구로 새롭게 밝혀진 사실”이라고 밝혔다.

아만졸 커마쉐브 (Amanzhol Kurmashev) 연구원은 “면역반응은 원인균에 상관없이 동일하게 일어나기 때문에 모든 종류의 세균, 바이러스 감염여부 진단에 쓸 수 있고, 감염병뿐만 아니라 암 조기 진단에도 응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항생제 저항성 세균에 감염된 쥐로 개발된 미세 유체 칩의 성능을 테스트했다. 감염된 쥐의 혈액 한 방울(50 ㎕)을 미세유체 소자에 흘려주었을 때 감염되지 않는 쥐보다 더 많은 양의 백혈구가 유체 관 벽면에 붙어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감염된 지 1시간 밖에 지나지 않은 초기에도 정상쥐와 비교해 더 많은 양의 백혈구가 붙어있었다. 감염 환자 조기 선별이 가능한 대목이다.

▲ 미세 유체 칩의 원리. 감염된 사람은 백혈구 표면에 발현되는 특정 단백질의 양과 이 단백질을 발현하는 백혈구 숫자(비율) 자체가 증가한다. 혈관 내피에서는 백혈구가 부착 할 수 있는 단백질이 발현된다. 연구진은 혈관 내피 단백질을 미세 유체 칩에 코팅해 감염여부를 진단 할 수 있는 진단장치를 개발했다.

강주헌 교수는 “기존의 혈액배양이나 PCR검사 방법보다 더 빠른 시간 안에 진단 결과를 알 수 있고, 진단에 필요한 광학현미경도 이미지 확대에 필요한 배율이 낮아 스마트폰에 장착이 가능한 수준”이라며 “궁극적으로 5~10분 내에 감염여부를 진단하는 저렴한 휴대용 진단 시스템을 완성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인체에도 동일한 면역 시스템이 있고, 인간의 백혈구는 실험에 사용된 쥐보다 수천 배 더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 때문에 상용화 가능성이 높다”며 “병원과의 공동연구를 통해 환자를 선별하는 임상 연구를 계획 중”이라고 밝혔다.

연구팀이 개발한 미세 유체 칩은 기존의 방법으로 알아내기 어렵던 초기 환자의 감염 여부를 한 방울의 혈액을 통해 판별할 수 있고, 측정기기의 구성이 단순해 현장 진단 등에 최적화된 기술이라 할 수 있다.

중환자실 등의 감염 환자의 빠른 진단이 필요한 곳에서 활용될 경우 환자의 생존율을 높이거나, 기존의 발열 체크와 문진표 작성에 의존하고 있는 1차 선별 작업에 활용될 경우, 보다 정밀한 전염병 방역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연구 결과는 엘스비어(Elsevier) 출판사에서 발간하는 국제학술지 ‘Biosensors and Bioelectronics’에 2020년 8월 29일자로 온라인 공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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